이스파한
종류: 페르시아 러그
장소: 이란 중부, 이란 고원 중앙에 위치한 도시 (구 페르시아)
매듭 밀도: 1제곱미터당 400,000 ~ 1,500,000 노트
특징: 중앙에 메달리온, 꽃무늬, 모스크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소재: 고품질 코르크 울, 실크
이스파한(에스파한, Isfahan)은 이란 중앙부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로, 오래전부터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번영해 왔습니다. 16세기 말 샤 아바스 1세가 사파비 왕조의 수도로 삼으면서 웅장한 모스크와 광장이 세워졌고, '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이라는 찬사를 받는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당시 세워진 웅장한 건축물인 이맘 광장(옛 명칭: 왕의 광장), 이맘 모스크, 알리 카푸 궁전 등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의 풍부한 예술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스파한 러그입니다.
페르시아 러그와 이스파한
페르시아 러그란 이란 각지에서 전통적으로 손으로 짜는 고급 러그의 총칭으로, 타브리즈(Tabriz), 나인(Nain), 쿰(Qum), 카샨(Kashan), 그리고 이스파한이 '5대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도시의 공방에서 발전한 이스파한 러그는 세련된 디자인과, 꽃과 덩굴의 곡선을 섬세하게 그려 내는 정교한 직조가 매력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단정한 구도를, 가까이 다가가면 섬세한 디테일을 즐길 수 있습니다.
역사
16~17세기 사파비 왕조 시대, 이스파한은 페르시아 예술의 중심지로서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샤 아바스 1세는 예술과 건축에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으며, 궁정의 보호 아래 왕립 공방이 설립되어 많은 러그 장인들이 주변의 도시와 마을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이로써 이스파한의 공방에서는 왕족과 귀족을 위한 호화로운 러그가 다수 제작되었고, 수많은 명품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1722년 아프간족의 침공으로 이스파한 시가지는 괴멸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궁정의 후원을 잃은 러그 공방은 모두 폐쇄되었고, 사파비 왕조의 멸망과 함께 이스파한의 러그 산업도 일시적으로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 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페르시아 러그 산업이 부흥기를 맞이하자, 이스파한에서도 러그 제작이 다시 활발해집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는 카샨에서 이주한 장인들과 지역의 명장들의 손으로 최고급 러그 제작이 재건되었습니다.
이 부흥기에 활약한 직조자 중에는 세이라피안을 비롯한 저명한 작가도 있었으며, 이들의 노력으로 이스파한의 러그는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노트 밀도(직조의 정교함)
이스파한 러그의 특징 중 하나는 놀라운 노트 밀도입니다. 1㎡당 50만~100만 노트 이상의 밀도로 짜이기도 하며, 그 섬세함은 '그림 같다'는 평을 들을 정도입니다. 1cm²에 수십 개의 노트가 들어가기 때문에 문양의 표현력이 월등히 높고, 내구성과 유연성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매듭을 하나씩 손으로 묶는 작업은 아득할 만큼의 끈기를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어 1㎡당 50만 노트의 러그를 하루 1,000노트의 속도로 짤 경우, 완성까지 약 500일(약 1년 반)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단순 계산의 예이며, 실제 제작 기간은 직조자의 인원수, 의장, 공정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이맘 광장